일상적 사유
사랑을 부르는
소울푸드
📝글. 전우영 사회심리학자

마음이 허한 날, 몸이 시린 날
가끔, 멍한 상태로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가 있다. 주변에 참 많은 사람이 오가지만, 특별히 따뜻함을 주고받는 사람은 없다. 외롭고 쓸쓸하다. 그때마다 드는 생각. ‘내가 좀비 같은 인생을 살고있는 건 아닌가.’
조나단 레빈 감독의 <웜 바디스> 에서 사람과 좀비를 구분하는 기준은 체온이다. 사람은 심장이 뛴다. 그래서 사람의 몸은 따뜻하다. 하지만 좀비는 심장이 뛰지 않는다. 그래서 좀비의 몸은 차갑다. 사람은 몸만 따뜻한 게 아니다. 그들은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서로 사랑을 주고받으며 산다. 하지만 차가운 몸을 가진 좀비들은 마음도 차갑다. 그래서 서로 공격하고 물어뜯는다.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의 가정이 과학적 연구를 통해 검증된 사실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다수의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몸과 마음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 결과, 몸이 따뜻해지면 마음도 따뜻해진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홀로 남겨져서 외로울 때 ‘옆구리가 시리다’ 라고 말하는데, 이 말은 단지 은유적인 표현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외롭고 쓸쓸하면 몸도 식으니까. 추울 수밖에 없다.
마음을 녹이는 가장 쉬운 방법
영화 <웜 바디스>는 사랑으로 구원받는 좀비들의 이야기다. 무기력한 일상을 영위하고 있는 좀비들. 알(R, 니콜라스 홀트)도 그중 하나다. 그는 인간 사냥을 나갔다가 인간인 줄리(테레사 팔머)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알이 줄리를 보자마자 멈춰있던 그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한 것. 좀비와 인간의 사랑은 이렇게 시작한다. 사랑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따뜻한 피가 알의 온몸 구석구석 돌기 시작한다. 그의 몸은 점점 따뜻해진다.
좀비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꿈에 그리던 사랑이 내게로 와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영화처럼 훈훈하지 않다. 사람들은 좀비 같은 이에게 관심과 사랑을 주지 않는다. 사랑을 받으려면 우선, 좀비 상태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뭐 좋은 방법이 없을까?
가장 간단한 방법은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몸을 데우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따뜻한 음식을 먹는 것이다. 사실 우리의 무의식은 마음이 차가워지면 몸을 따뜻하게 만들라고 속삭인다. 그래서 외로울 때 자신도 모르게 따뜻한 무언가를 찾게 된다. 한 연구에서 고립된 상황을 경험한 사람들은 얼음이 들어간 시원한 음료보다 뜨거운 커피나 수프를 원했다. 외로움이 유발한 심리적 차가움을 따뜻한 음식을 통해서 완화하려는 무의식적인 행동이다.
만약 그 음식에 추억까지 담겨 있다면,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효과는 훨씬 강해진다. ‘소울푸드(Soul Food)’ 또는 ‘컴포트푸드(Comfort Food)’라고 부르는 음식에는 저마다의 추억이 담겨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소울푸드는 치킨누들수프다. 집에서 아이들이 감기나 몸살을 앓을 때 어머니들이 만들어주는, 우리로 치면 닭죽 같은 음식이다. 한 연구에서는 뭉근한 치킨누들수프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외로움이 줄어든다는 것을 발견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런 효과는 안정적인 애착이 형성된 사람에게서만 나타났다. 따라서 우리의 인생을 위로해주는 소울푸드는 바로 우리를 사랑했던 사람과의 따뜻한 추억을 재료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마음을
위로해주는
효과
우리의 인생을
위로해주는 소울푸드는
바로 우리를 사랑했던
사람과의 따뜻한 추억을
재료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의 소울푸드
가끔 사는 게 답답할 때, 나는 집 앞에 있는 라면 가게에 간다. 그 집은 라면 국물도 맛있지만, 감자로 만든 고로케*가 별미다. 갓 튀긴 고로케를 달달한 소스에 찍어 먹고, 라면 국물을 후루룩 마시면 어느새 몸은 따뜻해지고, 그 덕분에 마음도 풀리기 시작한다. 고로케는 내 소울푸드 중 하나다.
어머니는 아들이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가 잠들어 있는 새벽에 일어나셔서 바삭하고 따끈한 고로케를 만들어주셨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야 나는 고로케를 만드는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지를 알게 되었다. 사랑해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제는 어머니가 만들어주시는 고로케를 더 이상 맛볼 수 없게 되었지만, 내게는 아직 어머니가 남겨주신 추억이 있다. 덕분에 여전히 집 앞 라면 가게에서 고로케를 먹어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갑자기 날 보며 환하게 웃으시던 어머니 얼굴이 떠오른다. 왠지 오늘은 고로케를 먹어야 할 것 같다.
- 고로케
- 올바른 표기법은 ‘크로켓’이지만, ‘고로케’라고 써야 왠지 추억이 되살아나는 기분이다. 어머니는 이 음식을 꼭 ‘고로케’라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