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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 타고 온 소식
매서웠던 바람이 한풀 꺾이고 몸도 마음도 사르르 녹는 계절.
그런데 마음을 간지럽히는 이 봄바람이 순식간에 악마의 바람으로 변신하기도 한다는데,
산들바람을 타고 온 불청객은 누구일까.
📝글. 조수빈

언제나 방심하는 사이에 일은 생긴다
겨우내 꽁꽁 얼어붙었던 날씨에 조금씩 틈이 생기면서 봄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새순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한층 가벼워진 옷차림으로 야외 활동에 나섰다. 봄은 새가 지저귀는 소리마저 웃음소리로 들리는 계절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기에 더 뒤통수를 치는 소식들이 들려오는 계절이기도 하다.
봄에는 유독 산불 소식이 많다. 문제는 작은 불씨가 산 전체를 뒤덮는 대형 산불로 이어진다는 데 있다. 산림청에 따르면 전국의 역대 대형 산불의 반 이상이 봄철인 4월에 발생했다. 변해버린 날씨 탓이 크다. ‘봄’ 하면 따뜻하고 온화한 날씨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최근 해를 거듭할수록 봄의 기온은 높아지고 강수량은 낮아지고 있다. 워낙 비가 적게 내리니 산림 전체가 바싹 마르게 되고 작은 불씨에도 곧바로 불이 붙어 버리는 천연 장작이 되어 버린 것이다.
봄바람의 다른 이름, 양간지풍
그렇다고 마냥 ‘기후’ 탓인 것만은 아니다. 이 시기에 일어난 산불들은 ‘봄철’이라는 시기적 공통점뿐만 아니라 ‘지역’이라는 교집합이 하나 더 있다. 국내 산불 중 가장 큰 규모는 고성, 강릉, 동해, 삼척, 울진에 걸쳐 일어났다. 모두 동해안 지역이다. 봄철 동해안에 부는 바람에는 특별한 이름이 있다. 양양군과 고성군 간성 사이에서 부는 바람이라는 뜻의 ‘양간지풍’은 봄철에 영서지방에서 영동지방으로 부는 국지풍으로 고온건조하고 풍속이 빠르다. 다른 말로는 양양군과 강릉시 사이에 부는 바람이라고 해서 ‘양강지풍’이라고도 불린다. 거대한 산불을 야기한다고 해서 ‘화풍’이라고도 한다.
봄이 오면 겨우내 우리를 움츠러들게 만들었던 시베리아 고기압에 따뜻한 공기가 유입되면서 이동성 고기압을 형성하게 된다. 이동성 고기압은 대체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분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서풍은 동해안으로 불어오는 과정에서 태백산맥을 만나 산비탈을 오르게 된다. 하지만 먼저 불어온 따뜻한 공기가 산맥 위쪽을 뚜껑처럼 덮고 있기에 서풍은 계속 상승하지 못하고, 산맥을 넘자마자 폭포수처럼 산 아래로 떨어지게 된다. 이 형태가 바로 ‘양간지풍’이다.
양간지풍은 상층의 대기가 불안정할수록, 경사가 심할수록, 공기가 차가워지는 밤중일수록 바람이 강해진다. 그래서 산불이 발생할 경우 진화작업에 애를 먹이며, 불씨의 규모를 키우는 것이다. 실제로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산불이 났을 때 바람이 불면 확산 속도가 26배 이상으로 빨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해는 평소에도 태백산맥이라는 지형적 특성에 따라 바람이 거세게 부는 지역이다. 여기에 봄철의 양간지풍이 부채질을 하는 셈이다.
산불은 대부분 사소한 부주의에서 시작된다. 산을 오르거나 운전을 할 때 함부로 담배꽁초를 던져 버리지 않고, 야영이나 취사 또한 허가된 구역에서만 하면 산불의 위험을 절반 이상 줄일 수 있다. 특히나 봄철에 산에 뒤덮인 나무는 천연 장작이라는 걸 꼭 염두해 두자.
우리가 봄을 기다리는 이유는 예쁜 꽃나무와의 만남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내년에도, 후년에도 이 반가운 만남을 이어가고 싶다면 우선 작은 불씨라도 잘 간수하자. 불어오는 양간지풍을 막을 수는 없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