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섦, 서퍼들의 천국 양양
한때 나의 여름휴가 장소는 언제나 강원도 바다였다. 그중에서도 양양을 즐겨 찾았다. 모르긴 해도 고속도로 요금소 문지방이 닳고 닳았을 거다. 많은 직장인이 그렇듯 당시 내 휴가는 길지 않았다. 기껏해야 4박 5일 수준이었다. 그러니 해외로 눈을 돌리기엔 언감생심이었다.
돌이켜 보면 내 여행은 오로지 일상 탈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휴가 때마다 주야장천 양양을 찾았던 이유가 있다. 그건 바다였다. 양양의 에메랄드빛 바다는 일상탈출을 꿈꾸던 나에게 비상구나 다름없었다. 그 문을 통해 나는 즐거움과 해방감과 위로를 마주했다.
2015년 국내 최초 서핑 전용 해변으로 문을 연 하조대 서피비치는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이들에게 작은 해방구다. 서피비치에 들어서는 순간 ‘낯선 경험’이 시작된다. 파란 하늘과 바다를 배경 삼아 세워놓은 노란색 ‘SURFYY BEACH’ 글씨가 설레게 만든다. 시선을 좌우로 돌리면 1km 구간에 걸쳐 서핑 전용 해변이 펼쳐지고, 펄럭이는 그늘막 아래에 빈백존, 힐링존이 바다를 향해 자리한다. 서퍼를 위한 휴식 공간인 칠링존과 선셋바, 야자수 등 다양한 포토존 덕분에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신나는 음악까지 한 스푼 그득하게 올려주니 가슴이 쿵쾅거리는 게 인지상정이다.
이제 서핑을 즐겨보자. 이곳 해변은 넓은 직선형으로 수심이 얕고 파도가 일정한 높이로 일어 서핑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물론 영화 속 집채만 한 파도는 아니지만, 초급자와 중급자가 파도를 즐기기엔 충분하다. 전문 강사진과 서핑 장비도 완벽하다. 요가 프로그램도 있다. 한바탕 파도를 즐겼다면 선셋바에서 시원한 맥주 한잔을 즐기자. 알싸하고 깔끔한 맥주 한 모금에 파도와 씨름했던 피곤이 썰물처럼 사라진다.
양양은 서피비치 이외에도 서핑을 즐길 만한 해변이 여럿 있다. 죽도산을 사이에 두고 날개를 펼친 듯 나란히 자리한 죽도와 인구해변이 그곳이다. 두 해변의 백사장 길이는 모두 1km 남짓, 아담한 규모다. 인구해변을 마주한 거리는 ‘양리단길’이라 불린다. 서울 경리단길에 양양의 ‘양’자를 붙인 것인데 개성 넘치는 서핑숍, 카페, 음식점, 게스트하우스 등이 밀집했다. SNS에 소문난 곳들도 여럿 있다. 이국적인 서핑 카페를 비롯해 손맛 자랑하는 수제버거와 치킨에 싱싱한 해산물까지 선택지가 무궁무진하다.
바다로 향했다. 볕이 뜨거웠지만, 파라솔 안은 열기가 차단된 데다 바닷바람이 시원해 더위를 잊을 만하다. 선글라스 너머 푸른 바다가 왈칵 밀려온다.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고 곧추선 파도가 하얀 거품과 함께 사라진다. 바다는 쉼 없이 파도를 반복하며 이어간다. 그러는 사이 머릿속 상념들도 파도에 휩쓸려 간다. 생각의 끈이 풀리자 긴장했던 어깨가 유연해지고, 머리도 맑아진다. 바다 멍의 효험일까?
양리단길은 낮보다 밤이 매력적이다. 클럽을 찾은 청춘들은 화려한 조명과 강렬한 비트에 몸을 맡긴 채 떼창과 군무로 반응한다. 음악에 들썩이고, 열기에 뜨겁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운영하는 풀파티도 인기다. 수영장에서 신나게 놀다가 디제이의 현란한 음악에 홀린 듯 몸을 맡긴다. 양리단길의 밤은 한시도 쉬지 않고 새벽까지 쿵짝인다. 한마디로 신세계다.
서피비치에서는 매일 밤 애프터파티가 열린다. 양리단길과 다른 점이 있다면 변화무쌍한 팔색조 하늘이 아닐까. 노란색으로 시작해 붉게, 푸르게 그리고 검게 변하는 하늘은 잊지 못할 순간으로 가슴에 남을 것이다. 스페인에 이비자의 밤이 있다면 양양에는 양리단길과 서피비치의 밤이 있다.
Travel TIP

양리단길에는 게스트하우스, 서핑숍, 술집, 클럽이 모두 모여 있다. 낮엔 카페에서 여유를 즐기거나 서핑을 강습받고, 저녁엔 게스트하우스의 흥겨운 파티에 참석하면 된다. 양리단길 예약 전용 사이트(www.yyroad. co.kr)에서 숙박+서핑+파티를 결합한 게스트하우스 패키지와 호텔 패키지, 파티 패키지를 비롯해 서울~양양 서핑버스 상품도 판매한다. 양리단길에서 택시를 이용할 계획이라면 중심가를 벗어나서 이용하자. 주차된 차들과 인파로 매우 혼잡해 택시 진입이 어렵다.

익숙함, 양양의 일상을 엿보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도 여행의 이유 중 하나일 테다. 이제 익숙한 양양의 일상 속으로 떠나볼 차례다. 양양전통시장을 먼저 찾았다. 상설시장이지만, 여전히 4일과 9일에 오일장이 열린다. 시장 사람들의 투박한 일상을 물끄러미 지켜보며 시장통을 자박자박 걸었다.
여행을 목적으로 시장을 찾았다면 십중팔구는 먹거리 때문. 시장에서 맛볼 만한 음식으로 감자옹심이와 장칼국수, 메밀전병 등을 꼽는다. 그중 감자옹심이는 간 감자와 녹말을 반죽해 끓여낸다. 가게에 따라 칼국수 사리를 조금 넣기도 한다. 생김새는 매우 투박하다. 걸쭉한 국물에 감자옹심이를 수제비처럼 얇고 크게 떼어 넣은 꼴이 얼핏 감자수제비라 불러도 괜찮겠다. 녹말이 들어간 탓에 국물이 걸쭉하고 온도를 가늠하기 어렵다. 해서 멋모르고 급하게 먹었다간 입천장이 훌러덩 벗겨질 수 있으니 후후 불어가며 천천히 먹어야 한다. 사각거리는 감자의 식감이 재밌고 속을 데워주는 깊고 따뜻한 국물 덕분에 이열치열을 제대로 경험한다. 이외에도 장이 서는 날에는 바삭한 치킨과 쫀득한 도넛, 속이 꽉 찬 붕어빵 등 이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요깃거리가 많다.
시장 구경을 마치고 남애항으로 향했다. 방파제가 포근하게 감싸 안은 작은 어항이다. 삼척 초곡항, 강릉 심곡항과 더불어 동해안 3대 미항으로 꼽힐 만큼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곳이다. 영화 <고래사냥>의 마지막 장면을 촬영한 것을 기념해 세운 표지석이 있고, 그 뒤로 바닥이 투명 유리로 제작된 스카이워크 전망대가 있다.
남애항의 진짜 매력은 따로 있다. 항구의 소소한 일상을 지켜보며 망중한을 즐기거나, 태양을 낚으려는 듯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의 여유로운 모습을 지켜보는 것처럼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다. 모처럼 기회가 닿아 남애항에서 일출을 챙겨봤다. 어둠을 깨우는 어민들의 모습과 붉게 물든 바다를 향해 뱃고동을 울리는 어선과 그것을 묵묵히 지켜보는 빨간 등대를 묵도했다. 그 풍경이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과 너무 닮았다. 다만, 삶의 현장이 다를 뿐.
양양 여행의 궁극적인 이유는 낯섦을 통해 즐거움과 낭만을, 익숙함을 통해 일상의 소중함을 조용히 지켜보는 게 아닐까. 어느덧 나는 매일 출근하지 않는 전업 여행작가로 살고 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나에게 여행은 변함이 없다. 여행은 세상을 마주하는 또 다른 문이다.
양양전통시장 디저트 맛집 양양샌드

양양전통시장 상가 2층에 양양여성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문화카페 양양샌드가 있다. 인기 메뉴인 샌드위치와 샐러드는 사실 재료의 신선함이 중요한데 여긴 밭에서 금방 뜯어온 듯 푸릇푸릇 생기 넘친다. 양양을 추억하고 싶다면 선물용으로 딱 좋은 송이샌드와 연어샌드 그리고 귀여운 굿즈를 추천한다.

  • A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양양읍 남문5길 9, 2층
  • T 0507-1406-0585
남애항 속풀이 맛집 남애항 해녀횟집

과음으로 인해 뒤틀린 속을 풀기 좋은 맛집이다. 40년 모범업소를 자랑하는 만큼 청결하고 잘 정돈된 식당 분위기에 마음이 놓인다. 대표 속풀이 메뉴는 섭국이다. 소뼈와 닭을 넣고 끓여낸 진한 육수에 섭과 전복, 콩나물 등을 넣어 개운, 얼큰,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싱싱한 회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 A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현남면 매바위길 163
  • T 0507-1389-74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