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한류가 세계를 휩쓰는 시대다. BTS와 블랙핑크 같은 K-팝 아티스트부터, 맨해튼에서 성공을 거둔 한식 셰프들, 글로벌 OTT 플랫폼을 장악한 한국 드라마·영화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재능이 국제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러한 장면 속에서 많은 한국인들은 문득 “나도 같은 한국 사람인데, 왜 나는 저런 재능이 없을까?” 하는 자괴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 ‘재능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오해할 뿐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재능이 없다’라는 판단은 개인의 능력의 절대적인 수준보다는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에 기반한다. 이는 인간의 인지 구조가 원래 절댓값을 정확히 판단하는 데 서툴고, 두 항목 간의 상대적 차이를 구분하는 데 훨씬 더 능숙하기 때문이다. 인지심리학 실험에서도 사람들은 절대적 무게, 밝기, 길이 등을 맞추라고 하면 오류가 크지만, 두 자극을 비교하게 하면 아주 작은 차이도 민감하게 구분한다.
이러한 특성은 자기 평가에도 그대로 작용한다. ‘내 능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절대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어렵지만, ‘남보다 낫다/못하다’는 판단은 즉각적이다. 더욱이 한국 사회는 중·고등학교 내신, 수능 등 오랜 시간 상대평가 체제에 익숙해져 있어, 남과의 비교 민감성이 더욱 강화되어 있다. 그 결과, ‘재능이 없다’는 생각은 자신의 실제 능력의 결핍을 반영하기 보다는 주변보다 나은가 못한가에 대한 인지적 판단의 결과에 가깝다.
하지만 여기에는 더 큰 문제가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을 기준(상향 비교)으로 삼는다. 상향 비교는 동기를 높여주고 노력을 하여 성취를 이루게 할 수 있지만, 지나치면 자기 비하와 무력감을 낳는다. 특히 SNS는 상향 비교를 극단화 시킨다. 사람들은 ‘SNS’가 자신의 최고의 순간을 모아서 보여주는 곳이란 걸 잘 알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일상과 다른 사람들의 최고의 순간을 비교하게 된다. 재능이 충만한 사람들로 가득한 우리 사회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공평한 비교만으로도 가혹한데, 타인의 최고의 순간을 기준으로 삼으면 비교 자체가 무의미하다.
또한, 우리의 인지체계는 부정적 정보에 더욱 민감하다. 이는 위험을 빠르게 탐지하도록 하여 생존에 유리하게 하지만, 자신에 대한 평가에도 영향을 준다. 따라서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보다 못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쉽게 떠올리며, 긍정적 피드백보다는 부정적 피드백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고 오래 기억한다. 즉, 약점은 잘 떠올리는데 장점은 좀처럼 찾지 못한다. 나는 이렇게 약점이 많아 불안하고 두려운데, 다른 사람들은 잘 해낸다. 내가 경험한 실수와 결점은 다 보이지만,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오직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물과 성취만 보인다. 이와 같은 부정적 편향과 자신과 타인의 정보에 대한 비대칭성은 남을 과대 평가하고 나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만들어 ‘나는 남들에 비해 특별한 재능이 없다’라는 인식을 강화한다.
이제 원인을 알았으니 해결책을 고민해보자. ‘재능이 없다’ 라는 판단의 상당 부분은 실제 능력의 부족이라기보다는 인간 인지의 특성—상대 비교의 습관, 상향 비교의 경향, 부정성 편향, 정보 비대칭—이 만들어낸 착시이다. 또한 재능은 타인과의 비교가 아니라 나의 흥미와 경험, 행동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특질이므로, 남보다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의존하는 상대 비교에서 벗어나 비교하지 않아도 드러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하지만 단순히 상대 비교를 멈추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 감정, 행동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능력인 메타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키워야 한다. 재능을 발견하는 과정은 타고난 차이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한 올바른 이해’ 를 회복하는 과정이다. 내가 잘하는 행동, 나의 흥미, 내가 현재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를 명확히 인식하고, ‘남보다 잘하는가?’가 아니라 ‘나는 어떤 활동에 자연스럽게 몰입하는가?’를 묻고, 현재의 나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무엇을 더 해야 할지를 판단하고 실행하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내 자신의 재능을 발견할 수 있다. 많은 연구들에서 IQ보다 메타인지의 정확성, 즉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정확하게 아는 능력이 학업의 성취와 더 관련이 깊다고 제안하고 있는데, 이는 자신을 이해하는 능력이 ‘재능’의 기반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남과의 비교는 나의 재능을 감추지만, 메타인지를 통해 나의 경험과 감정을 관찰하고, 무엇이 나를 움직이고 성장시키는지 이해하는 것은 숨겨진 나의 재능을 점점 더 드러나게 할 것이다.
현재의 나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무엇을 더 해야 할지를 판단하고 실행하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내 자신의 재능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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