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에너지는 바다에서 올라온다.
바다는 배경이 아니라, 도시 안으로 깊게 파고들어 사람들의 걸음과 말투, 하루의 리듬을 결정한다.
해운대와 광안리, 송도는 같은 바다처럼 보이나 즐기는 방법이 다르고, 시장통의 비릿한 냄새와 사람 냄새가 뒤섞이며 부산은 비로소 부산다워진다.
바다와 도시가 부딪히고 껴안으며 만들어낸 소란스러운 풍경 속에서 우리는 ‘진짜 부산’을 만난다.
글. 사진. 임운석 여행작가
같은 바다 다른 즐거움
해운대 해수욕장 동쪽에 자리한 미포항은 영화 <해운대>의 주요 무대였다. 한때 수많은 어선이 정박했으나 지금은 싱싱한 해산물을 판매하는 횟집과 포장마차가 길을 채우며 활기를 더한다. 위로는 옛 동해남부선 철길을 따라 운행되는 해운대 블루라인파크가 펼쳐진다. 남해와 동해가 만나는 풍경을 천천히 감상할 수 있어, 해운대를 찾는 이들이 꼭 들르는 명소다.
열차는 해변열차와 스카이캡슐로 나뉜다. 근대 전차를 닮은 해변열차는 미포정거장에서 출발해 4.8km의 선로를 따라 송정까지 이어진다. 지정좌석제가 아니기 때문에 전망이 좋은 자리를 원한다면 조금 일찍 도착하는 편이 좋다. 종착지인 송정역에서 자유롭게 시간을 보낸 뒤, 다시 돌아오는 열차를 이용하면 여행이 완성된다. 스카이캡슐은 해변열차보다 높은 7~10m 상공의 레일을 달린다. 2~4인승의 작은 캡슐은 연인과 가족 여행객에게 인기다. 미포정거장에서 출발해 청사포까지 2km 구간만 운행하며,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간다.
겨울 밤바다를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광안리 해수욕장이 제격이다. 차가운 해풍 속에서도 밤하늘을 수놓는 ‘광안리 드론라이트쇼’가 따뜻한 색감을 입힌다. 공연 시작과 함께 웅장한 음악이 해변을 가득 채우고, 광안대교는 거대한 이퀄라이저처럼 화려한 빛을 뿜으며 배경이 된다. 동시에 1,000대가 넘는 드론이 밤하늘을 비행하며 환상적인 형상을 만들어낸다. 이를 지켜보는 관람객들의 입에서는 저마다 탄성이 터져 나온다. 드론라이트쇼는 해변 어디서든 관람할 수 있지만, 해변 정중앙에 있는 도로 가장자리의 계단에 자리를 잡으면 드론이 펼치는 공중 예술과 빛나는 광안대교의 조화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동절기 공연은 매주 토요일 오후 7시와 오후 9시, 두 차례 열린다.
색다른 방식으로 바다를 즐기고 싶다면 송도해상케이블카가 답이다. 1960~1980년대 전국 최초 해상케이블카로 인기를 누리다 1988년 태풍 피해로 운영을 멈췄지만, 2017년 이전보다 4배 긴 1.62km 거리와 규모로 다시 돌아왔다. 동쪽 송림공원과 서쪽 암남공원을 잇는 이 케이블카는 최고 86m 높이에서 바다를 가로지르며, 바닥이 투명한 크리스털 캐빈부터 일반 캐빈까지 총 39기가 운행된다. 도시의 고층 빌딩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높이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는 그 자체로 짜릿하다. 해가 지면 송도의 야경이 바다 위로 번지고, 케이블카는 천천히 여정을 이어간다. 낮과는 전혀 다른 얼굴의 바다가 펼쳐진다.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본 용궁구름다리, 송도구름산책로, 송도해안볼레길도 놓치기 아깝다. 특히 해안볼레길은 송도해수욕장에서 암남공원까지 이어지는 길로, 기암절벽과 바다 절경이 어우러져 도심 속 최고의 산책 코스로 꼽힌다.
ⓒ디엔에이스튜디오
해운대 블루라인파크
A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청사포로 116, 청사포정거장
T 051-701-5548
ⓒ비짓부산 (주)써머트리
광안리 드론라이트쇼
A 부산광역시 수영구 광안해변로 219, 광안리 해수욕장 일대
T 051-610-6518
송도해상케이블카
A 부산광역시 서구 송도해변로 171
T 051-247-9900
ⓒ한국관광공사 전형준
소란스럽고 사람 냄새 물씬한 도시 가운데
도시를 더 깊이 이해하려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엿볼 필요가 있다. 그 대표적인 장소로 부산의 3대 전통시장으로 꼽히는 국제시장, 부평깡통시장, 자갈치시장이 있다.
국제시장의 시작은 광복과 맞닿아 있다. 당시 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부산항에 모인 일본인들이 자기들의 가재도구를 싼값에 내다 팔면서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워낙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는 풍경 탓에 처음에는 ‘도떼기시장’이라 불렀다. 이후 큰 변화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부터다. 전국에서 모여든 피란민들과 더불어 군수물자, 밀수품 등이 대거 유입되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자연스럽게 ‘국제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기계, 공구, 전기전자, 주방기구, 의류, 문구류, 침구류 등 없는 것 빼곤 다 있다는 말이 나올 만큼 다양한 물건을 취급한다. 특히 먹자골목은 씨앗호떡, 비빔당면, 어묵 냄새가 골목 입구에서부터 사람들의 시선과 후각을 잡아 끈다. 609청년몰은 청년들의 아이디어와 개성이 살아 있어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다.
국제시장을 중심으로 서북쪽에는 부평깡통시장이, 남쪽 바닷가에는 자갈치시장이 있다. 이름부터 재밌는 부평깡통시장은 지명인 ‘부평’에 한국전쟁 당시 미군 부대에서 나온 ‘깡통(통조림)’을 판매하면서 지금의 이름이 됐다. 이 시장이 여행객들에게 입소문 난 이유는 2013년 국내 최초로 야시장이 문을 열면서부터다. 현재는 깡통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다양한 품목을 취급하고 있는데 그중 먹거리가 유명하다.
자갈치시장은 부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표적인 시장이다. 이름은 굵은 ‘자갈’과 물고기를 뜻하는 ‘치’가 붙어 자갈치시장이라 부른다. 이 시장 역시 한국전쟁을 거치며 규모가 크게 확장됐다. 자갈치시장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은 활기 넘치는 ‘자갈치아지매’들과 싱싱한 해산물이 수북이 쌓인 좌판, 그리고 얼음을 가득 실은 손수레가 사람들 사이를 곡예 하듯 누비는 모습이다. 이 모든 요소는 부산을 찾은 여행객들이 자갈치시장을 꼭 한 번 가봐야 할 곳으로 만드는 활기찬 하모니의 주인공들이다.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횟집 거리에서는 자갈치시장만의 별미로 손꼽히는 곰장어와 고래고기를 맛볼 수 있다. 특히 연탄불에 구워 불향 가득한 곰장어는 한번 맛보면 잊지 못해 다시 찾게 되는 별미 중의 별미다.
부산의 트렌디한 감성을 느끼고 싶다면 전포카페거리로 향하자. 과거 공구상점이 즐비했던 전포동 일대가 지금은 개성 넘치는 카페와 공방, 이색 식당들로 재탄생했다. 무엇보다 획일적인 프랜차이즈 대신, 주인장의 취향이 고스란히 담긴 아기자기한 인테리어와 자기만의 메뉴로 방문객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특히 낡은 공구상점 간판과 세련된 카페 건물이 이질적이면서도 조화롭게 어우러져 이 거리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든다. 이 특별한 매력 덕분에 2017년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올해의 세계 여행지 52곳’에 한국에서 유일하게 이름을 올리기며 세계적인 명소로 발돋움했다. 지금은 카페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품샵과 식당들이 어우러져 부산 여행 필수 코스로 자리매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