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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악의 가뭄이 찾아왔다!” “○○댐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연일 보도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댓글창은 생각보다 조용합니다. 중부와 남부로 나뉜 강수 양극화로, 다수의 네티즌이 가뭄을 ‘내 일’로 느끼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중부와 남부지방의 연 강수량은 각각 1,454.7mm, 922.2mm로 역대 가장 큰 폭의 차이를 보였습니다. 남부지방은 강수량이 그저 적은 것만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습니다. 지난해 가뭄일수는 무려 227.3일로 역대 최장 기록을 세웠습니다. 지난해 3월부터 시작된 가뭄은 1년째 계속되고 있고요.

지역별로 들여다보면 격차는 더욱 커집니다. 수도권의 연 강수량은 무려 1,750.4mm. 평년의 132.6%에 달했습니다. 강수량만 많았던 것이 아니라 깊은 상처를 남겼죠. 평온해야 했던 퇴근길은 악몽으로 바뀌었으며, 보금자리는 물에 잠겼습니다. 같은 기간, 광주·전남지역의 강수량은 854.5mm로, 수도권의 절반도 안 됐습니다.

지난 3월 중순, 호남지역 일대 곳곳을 살펴봤습니다. 1박 2일의 출장 기간 동안 장장 1,300km의 거리를 이동했죠. 나주호의 물은 바싹 말라 있었습니다. 바닥 곳곳의 민물조개 껍질만이 이곳에 물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유일한 힌트였죠.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흙먼지가 일었습니다. 나주평야 일대의 농민들은 하나같이 무거운 걱정을 안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영산강이 있어 괜찮다”던 어머님은 이웃 마을의 농사 걱정을 짊어지고 있었고, 당장 마늘과 소풀이 말라가던 아버님은 “비 예보가 있던 날, 기껏 기대해 봤더니 5mm도 채 안 내리더라”라며 혀를 찼습니다.

차를 타고 마을을 옮겼습니다. 보리 이모작이 한창인 곳이었습니다. 얼핏 초록빛을 띄고 있어 ‘여긴 따로 물을 대는 건가?’ 싶어 두렁에 있던 농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답을 듣기도 전, 그의 표정을 통해 무지에서 비롯된 우문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뿌리도 제대로 내리지 못한 보리는 힘없이 뽑혀 나왔고, 그렇게 농부의 손에 들린 보리의 끝은 전부 노랗게 타버린 상태였습니다.

“기후변화가 아주 심각하죠. 이제 이렇게 여름이면 온도가 너무 고온으로 올라가버리니까 농사짓기도 앞으론 무진장 힘들 것 같아요. 수확량도 그렇고, 식량 자급도 그렇고, 앞으로 미래가 좀 걱정되죠.”

농부는 기후변화에 대한 걱정을 쏟아냈습니다.

“앞일을 어떻게 알겠습니까마는 기후변화가 이렇게 더 심각해진다면 앞으로 더 문제가 있겠죠. 우리 후손들이 조금 편히 살아야 할 텐데 걱정이네요.”

타버린 것은 보리 끝만이 아니었습니다. 보리 끝도, 그의 마음도 타들어가기는 모두 매한가지였죠. 올해만 ‘예외적인 가뭄’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기후변화가 가속화할수록 한반도의 강수량은 늘되 강수일수는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폭우와 가뭄이 함께 찾아온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농부의 마음을 넘어 우리 모두의 밥상을 뒤흔듭니다. 여름철엔 폭우가, 여름을 제외한 계절엔 가뭄이 찾아오고, 기온까지 급등하면서 농업 생산량엔 특히나 우리의 주식인 쌀의 생산량엔 엄청난 타격을 주기 때문입니다.

모내기를 하고 나면 벼는 자라나 꽃을 피웁니다. 그 꽃이 지고 나면 쌀알이 열리죠. 현재 쌀알이 열리는 비율(등숙률)은 92.2%입니다. 하지만 2060년대엔 등숙률이 51%로 떨어질 전망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쌀알 가운데 깨진 곳 없이 오롯한 모습을 한 쌀알, 정상립의 비중은 현재 73.1%에서 2060년대 46.5%로 급감할 걸로 예상됩니다. 최근 쌀 소비량이 줄어들면서 사회적 갈등과 문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후변화로 소비량이 줄어드는 속도보다 생산량이 줄어드는 속도가 더 빨라질 지경입니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생산량의 감소를 넘어 ‘변동성의 증가’ 역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기후 변동성이 커지면서 정교한 수급 조절 정책을 세우기 어려워지는 겁니다.

이미 미래는 예견됐습니다. 폭우와 가뭄의 동시 증가, 기온의 상승, 그로 인한 식량 안보 위기. 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기후변화 대응의 두 축, 완화(Mitigation)와 적응(Adoptation)이 그 답입니다. 완화야 말 그대로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노력일 테고, 적응은 바로 물을 자원으로써 가치 있게 활용하는 일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