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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비건 요리는 곧 맛이 없는 요리라는 선입견을 품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 맛이 없는 식재료는 없죠. 재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알맞게 요리하고 또 그 맛에 익숙해지면 비건 요리도 일반 요리 못지않게 맛있을 수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음식’을 추구하다

시중의 음식들은 소비자를 사로잡기 위해 나날이 자극적인 맛을 쫓아가고 편의점과 패스트푸드점을 중심으로 공장식 식품 생산 시스템에 익숙해진 지 오래다. 어느새 우리의 식탁은 ‘자연스러움’을 찾기 힘들어졌다. 이에 자연주의 비건 요리의 권위자 권오진 셰프는 식재료 본연의 특성을 그대로 살리는 건강한 요리를 제안한다. 그는 요리가 단순히 ‘맛’만 있기보단, 건강과 환경을 생각하면서 맛을 챙겨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흔히 비건 요리는 곧 맛이 없는 요리라는 선입견을 품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 맛이 없는 식재료는 없죠. 재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알맞게 요리하고 또 그 맛에 익숙해지면 비건 요리도 일반 요리 못지않게 맛있을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그가 자연주의 요리를 추구한 것은 아니었다. 과거 권오진 셰프는 국내외 유명 호텔의 셰프로 일하며 화려한 경력을 쌓아가던 중 언젠가부터 자신의 안이 텅 비어가고 있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호텔에서 일하며 조미료와 각종 양념으로 음식을 만들게 되는데요. 사실 양념은 주 식재료가 충분한 맛을 내지 못할 때 필요한 것으로 본 재료의 맛을 가립니다. 이렇게 그저 고객의 입에 음식이 들어가는 순간만을 만족시키기 위해 요리하는 것이 아쉬웠죠.”
그는 바로 앞에 놓인 진급의 기회까지 마다한 채 더 많은 이들에게 정직한 자연의 맛을 일깨워주겠다는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바로 ‘작은 텃밭’이라는 의미를 지닌 주말농장 ‘르 끌로조’다.
르 끌로조에서 권오진 셰프는 온전한 자연의 힘으로 재배한 작물을 재료 삼아 비건 요리를 연구하고 선보이고 있다. 그의 농장에는 아티초크, 토종 감, 인디언 감자, 화이트 당근, 골든 베리 등 국내외 다양한 품종의 작물들이 자란다.
“예전에 시골 어른들이 자급자족을 위해 텃밭을 일구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에 여유를 가지고 재배하고 또 내가 먹을 음식이기에 정성을 더 들입니다. 르 끌로조는 속도와 양에 대한 압박을 내려놓고 계절의 변화를 충실히 따르는 곳이에요. 이렇게 한창 무르익었을 때를 기다리다 맛보는 식재료는 그야말로 꽉 찬 맛을 냅니다.”

비거니즘, 그가 요리를 대하는 자세

권오진 셰프가 고집하는 요리 방식은 식재료 원래의 모양을 오롯이 살리며 있는 그대로 단순하게 요리하는 것이다. 독소를 빼거나 소금이나 후추 같은 최소한의 간만 맞춰도 충분하다고 한다. 필요 이상의 영양을 제공하는 현대인의 육식 위주의 식사는 어쩌면 욕심이라고.
비거니즘은 일반적으로 고기를 먹지 않는 식생활을 포함해 생활 전반에서 동물성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삶의 방식을 일컫는다. 인간 중심 주의에서 벗어나 지구에 살아가는 존재 모두를 고려하는 넓은 개념이다.
“자연과 인간은 선순환 구조를 이루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비거니즘을 통해 자연을 존중하고 지켜주면 지구는 우리에게 훌륭한 식재료를 제공해요. 식재료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함을 갖게 되고, 좋은 음식으로 우리의 몸이 건강해지는 것은 당연하고요. 이렇듯 저는 비거니즘을 곧 인간과 지구 사이의 오가는 ‘베풂’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비거니즘에 관심이 생긴 사람들에게 먼저 들판과 밭으로 가서 자연의 먹거리와 친해질 것을 권한다. ‘작물이 이렇게 예쁘게 자라는구나’, ‘이런 촉감을 가지고 이런 색을 띠는구나’를 눈과 손으로 느끼는 것부터 비거니즘이 시작될 수 있다고 한다. 처음엔 낯설게 느껴지는 비건 요리일 수 있지만 어느새 건강한 음식이 곧 맛있는 음식임을 깨닫게 된다고 한다.
“일단 제철 식재료를 활용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특히 지금 한창때인 제철 작물은 물을 빨아당기는 속성이 있어 맛이 순한데요. 이때 열을 가하면 물러지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생으로 먹거나 샐러드로 만들어 먹는 것이 좋습니다. 봄철에 나온 양파로 양파 샐러드, 양파 김치, 양파 피클을 만들어보길 추천합니다.” 이날 권오진 셰프가 선보인 ‘키다리 파프리카와 채소 글라세’, ‘텃밭 해시브라운 감자와 토마토 쿨리’ 요리에는 직접 키운 감자가 재료로 쓰이고 소금, 설탕, 비건 버터 외 별도의 조미료가 첨가되지 않았다. 순하고 담백한 맛을 내는 이 요리가 자연을 사랑하며 꾸밈없이 살아가는 권오진 셰프의 모습과 닮은 듯했다.

소중한 자연을 더 오래 더 기쁘게 만나기 위해

권오진 셰프는 환경 보존과 관리에 대한 중요성에 특히 목소리를 높이며 건강을 지키고 싶다면 자연에 나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당장 불편함이 없다고 해서 마구 자원을 낭비하고 환경을 파괴하면 결과적으로 인간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길이라는 것이다.
“몸 건강과 지구 건강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염된 지구의 공기와 물을 먹고 자란 식재료가 어떻게 건강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농축된 오염물을 먹는 것과 다르지 않은데 이게 바로 우리의 먹거리가 된다는 것이니 큰 문제인 거죠.”
이어서 앞으로의 방향을 묻는 말에 그는 음식이 우리 식탁에 오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공유할 수 있는 큰 농장과 키친을 만들고 싶다고 답했다.
“작물의 성장부터 지켜보고 수확 체험과 요리 기회까지 제공하는 일종의 힐링 코스를 제공하고 싶어요. 이곳에서는 어른부터 아이까지 자유롭게 요리 세계를 펼칠 수 있는 거예요. 그렇게 자연 속에서 요리하며 맑은 자연이 얼마나 위대하고 이로운 것인지를 몸소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제가 자연으로부터 받은 이 기쁨과 행복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은 게 저의 진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