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한반도 전역의 하늘이 누렇게 물들었습니다. 출근길, 남산서울타워의 모습은 누런 모래먼지에 자취를 감췄습니다. 연신 워셔액을 뿌려대며 출근했지만, 도착 후 앞 유리엔 금세 앉은 황사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올해 황사는 1월과 3월에만 각각 두 차례나 찾아왔었습니다. 하지만 지난달의 황사만큼 심각하진 않았죠. 서울특별시는 시간당 최고 379㎍/㎥, 광주광역시는 최고 467㎍/㎥, 대구광역시는 508㎍/㎥까지 농도가 올랐고, 국외유입 대기오염물질의 청정지역으로 꼽히는 제주도는 무려 599㎍/㎥까지 농도가 치솟았습니다. 시간당 최고 1,040㎍/㎥(광주광역시)의 농도를 기록하며 마지막으로 황사경보가 내려졌던 지난 2021년 3월 29일 만큼은 아니었지만, 다시금 온 국민의 눈과 귀가 황사 뉴스에 집중되기엔 충분했습니다.
분명 대기질이 전반적으로 좋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왜 황사만큼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을까요? 궁금함에 여러 가지 자료를 들여다봤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의외의 사실을 마주했습니다. 황사와 기후변화 사이, 유의미한 관계가 있는 겁니다.
우선 황사의 ‘주요 발원지’로 꼽히는 몽골 남부와 중국 네이멍구 지역의 기상 상황을 살펴봤습니다. 지난 2월, 한 달 동안의 강수량은 5mm 안팎에 불과했습니다. 아예 비가 내리지 않은 곳도 있었죠. 그나마 빗방울이 떨어졌던 곳이라도 강수량은 평년의 25 ~ 50%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기온은 평년보다 3 ~ 5℃ 높았고요. 고온 건조한 상태가 계속된 겁니다.
해당 지역은 평소에도 겨울과 봄 사이 강수량이 매우 적습니다. 반면 풍속은 3월부터 빨라져 4 ~ 5월 정점에 이릅니다. 비는 적고, 바람은 강하고. 한반도에 해마다 황사가 찾아왔던 이유입니다. 안 그래도 이런 기후 특성을 보이는 지역인데 평년보다 더 메말랐으니, 황사가 찾아오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앞으로 이곳의 상황이 더욱 황사 발생에 취약해진다는 겁니다. 이미 1990년부터 2020년까지 지난 30년간 몽골의 사막화는 계속 심해져만 갔습니다. 몽골 국내외에서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며 곳곳에 나무를 심고 있지만, 녹화의 속도가 사막화의 속도를 넘어서지 못한 겁니다.
국내에선 몽골 관련 연구나 전망을 찾기 어려워 해외로 눈을 돌렸습니다. ERA5(유럽 중규모 예보센터의 5세대 분석 시스템), GDAS(미국 NOAA의 전지구 자료동화 시스템), GSMaP(일본 JAXA의 강수자료 위성 맵핑 시스템), IMERG(미국 NASA의 통합 다중 위성 검색 시스템) 등 다양한 데이터를 취합해 머신러닝과 모델링을 통해 1km 해상도의 상세한 미래 예측 자료를 공개하는 GloH20도 몽골의 사막화를 우려했습니다. 우리가 감축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을 때(RCP 8.5 시나리오), 몽골은 위도에 상관없이 사막화가 심각해질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더더욱 황사 발원이 용이해진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발원한 황사가 한반도로 향할 때 국내 황사 농도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나라의 기상 상황입니다. 분명 위성사진으로 봤을 때엔 똑같이 황사가 한반도 상공을 뒤덮어도 경우에 따라 농도가 높을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희비를 가르는 건 당시 우리나라 대기의 수직 방향 움직임, 그리고 지표 부근의 풍속입니다. 고기압의 영향권에 들어 하강기류가 강하다면 국내에 유입된 황사는 순식간에 우리가 생활하는 지표를 가득 메웁니다. 반면 하강기류가 약할 때엔 그대로 한반도를 대기 상층에서 지나쳐버리죠.
지난 4월 12일, 전국에 비를 뿌렸던 기압골이 지나고 한반도는 고기압의 영향권에 들었습니다. 이때 중국 네이멍구에서 발원했던 황사는 한반도를 향했고, 이 모래먼지는 고기압의 하강기류를 따라 그대로 한반도에 내려앉았습니다. 이날 낮 시간, 중부지방을 중심으론 제법 강한 바람이 불었지만, 유입량 자체가 워낙 많았던 터라 황사가 흩어지기는커녕 모래바람만 심했습니다. 잠시만 밖을 걸어도 마치 학창 시절 운동장에서 뒹굴고 난 뒤의 상태처럼 변해버렸죠.
우리의 봄철 기후가 대기오염에 취약한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에 대해 지난 ‘지구보고서’에서 설명드린 바 있습니다. 강수는 줄고, 일조시간은 늘어나며, 풍속은 약해지고 있다고요. 이는 고농도 초미세먼지뿐 아니라, 국외에서 유입된 황사의 농도를 높이는 환경이기도 합니다. 비가 줄고 해가 뜬 시간이 길어진다는 것은 ‘고기압의 영향을 받는 시간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황사든, 다른 대기오염물질이든 바다 건너 유입되고 나면 지표의 농도를 높이는 하강기류가 잦아진다는 겁니다. 그리고 내륙의 풍속이 약해진다는 것은 한번 유입된 황사가 좀처럼 흩어지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죠.
결국 근본적인 해결책은 기후변화 대응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대응은 그저 몽골 정부에게만 맡겨놓을 일이 아닙니다. 몽골의 척박한 남부지방에선 여전히 각종 바이오매스나 폐타이어 등 각종 폐기물을 열원으로 쓰고 있습니다. 온실가스뿐 아니라 대기오염물질 배출이 현저히 적은 우리의 선진 기술력을 지원하고, 부족한 수자원에 대응하기 위한 노하우를 전수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몽골 남부와 중국 네이멍구의 녹화 사업에 참여한다면 그로 인한 혜택은 몽골 국민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돌아갈 겁니다. 기술적, 정책적으로 보다 세련되게 접근한다면 이를 통해 우리의 국외감축분을 확보할 수도 있을 테고요.
기업들의 ESG가 생존을 위한 경쟁력 확보 노력인 것처럼, 우리나라가 주변국의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 역시 ‘대외 이미지 개선’을 넘어 우리 스스로의 삶의 질과 온실가스 감축을 돕는 ‘자구책’인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