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군과 평화의댐에 가려면 460번 지방도를 지난다. 한적한 이 도로에 아흔아홉 굽잇길로 알려진 해산령이 있다. 높고 깊은 고갯마루인지라 봄은 느리고, 가을은 빠르다. 여름도 숲이 깊은 만큼 골도 깊어 시원한 계곡이 더위를 식힌다. 해산(1,194m)은 화천군에서 해가 가장 먼저 떠올라 해산 또는 일산(日山)이라고 불린다. 숲이 우거져 옛날에는 호랑이가 출몰했다고 한다. 그래서 예부터 해산을 ‘호랑이산’이라 부르기도 했다. 해산터널 인근에 있는 전망대에 호랑이 형상의 구조물이 들어선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해산령 아래에 파로호가 생기면서 오지마을이 된 비수구미마을이 있다. 마을에 가려면 해산령 휴게소에 차를 세워두고 마을까지 연결된 6㎞ 비포장길을 걸어가거나, 파로호에서 배를 이용해야 한다. 마을로 가는 비포장길이 힐링 명소로 손꼽힌다. 스마트폰도 먹통이 되는 한적한 이 숲길에는 오로지 계곡의 물소리와 새소리, 바람 소리만 가득하다. 길은 시작부터 마을이 있는 마지막 6㎞ 지점까지 내리막길이다. 하지만 차가 있는 해산령 휴게소까지 되돌아오려면 오르막길을 걸어야 한다. 정수리에 내리쬐는 햇볕이 뜨겁다면 계곡 옆으로 몸을 숨겨보자.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고 망중한을 즐겨도 좋겠다. 도시에서 멀어졌으니 이제 자연이 주는 쉼을 누릴 때다.
화천군 하면 파로호를 빼놓을 수 없다. 72년 전, 이맘때였다. 1951년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힘입은 북한군은 일명 ‘4월 공세’와 ‘5월 공세’를 개시했다. 유엔군은 반격에 나섰으며, 국군 또한 5월 26일부터 28일까지 낮과 밤이 따로 없는 치열한 전투를 이어갔다. 끝내 승기를 거머쥔 것은 자랑스러운 국군이었다. 화력과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중공군 3개 사단을 물리치는 대승을 거둔 것이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오랑캐를 격파한 호수’라며 화천저수지를 ‘파로호’라고 이름 지었다. 파로호 전투 자료는 파로호안보전시관에서 볼 수 있다. 전시관 뒤편 산책로를 따라 150m 남짓 비탈길을 오르면 파로호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에 서면 우뚝 솟은 일산(1,140m)과 두류봉(426.6m), 구봉산(396.5m)이 파로호를 감싸고 있다. 산중에서 마주한 바다 같은 풍경이라니 무료한 일상탈출에 가슴이 뻥 뚫린다.
파로호를 즐기는 방법 가운데 첫 번째가 전망대에서 보는 풍경 감상이라면, 두 번째는 유람선 여행이다. 파로호선착장에서 평화의댐 구간까지 23㎞(편도)를 유람선이 운항한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다람쥐섬과 비수구미마을 등 숨겨진 비경을 오롯이 감상하며, 평화의댐 주변까지 속속 들여 챙겨볼 수 있다. 세 번째 방법은 파로호와 한 몸이 되는 수상스키와 웨이크보드 체험이다. 다소 낯선 웨이크보드는 물 위에서 하는 스노보드로서 수상스키보다 속도감과 긴장감이 훨씬 높다. 파로호 위를 내달리며 물보라를 일으키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짜릿하다. 파로호를 즐기는 마지막 방법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듯 맑디맑은 파로호의 싱싱한 자연의 맛을 현지에서 즐기는 것이다. 파로호선착장 주변에 회와 매운탕을 전문으로 하는 횟집 예닐곱 곳이 성업 중이다.
파로호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또 다른 곳은 평화의댐이다. 이 댐은 북한이 강 상류에 임남댐(금강산댐)을 만들자, 임남댐 붕괴에 대비해 국내 최대 높이(125m)로 건설한 국내 유일의 수공(水攻) 방어용 댐이다. 지난 2002년 1월, 북한이 임남댐 보수를 위해 사전 통보 없이 대량의 물을 방류해 평소보다 50배나 많은 물이 평화의댐에 유입됐는데, 평화의댐이 국민을 보호하는 파수꾼 역할을 착실히 수행해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더불어, K-water는 평화의댐을 활용한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제공한다. 그중 하나가 댐 콘크리트 사면에 그려진 ‘통일로 가는 문’이다. 트릭아트로 제작된 이 그림은 멀리서 보면 눈을 의심할 만큼 사실적인 데다, 세계 최대 규모(넓이 4774.7㎡)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평화의댐은 안보와 평화를 넘어 자연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친수공간으로 활용 중이다.
화천군의 참모습은 물과 산이 어우러져 만든 청정한 자연에 있다. 화천군의 아름다운 풍광은 물길을 따라 유구히 이어지는데, 이 길을 ‘산소길’이라 부른다. 강원도 내 18개 시·군을 잇는 산소길이 화천군 북한강에 이르러 ‘숲으로 다리’를 만난다. 감성과 낭만이 느껴지는 이 다리의 이름은 <남한산성>, <칼의 노래> 등을 쓴 소설가 김훈 작가가 지었다. 그는 자전거 여행 마니아로 우리나라 산천을 두루두루 여행하며 <자전거여행>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가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보고 느끼고 가슴에 담았을 화천군의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 민족이 총부리를 겨누고 피를 튀기며 싸웠던 산야, 그때 뿌려진 피는 물에 씻겨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똑똑히 기억한다. 상처가 깊을수록 반성도 후회도 염원도 깊다는 것을 말이다. 1.2㎞의 ‘숲으로 다리’에서 북한강의 노랫소리를 들어보자. 녹음이 내려앉은 강은 숲길인지 물길인지 구분이 모호하다. 그래서 작가는 이 다리를 숲으로 난 다리라 부른 것 같다. 숲과 물은 서로 나눌 수 없는 자연이기에 최소한 맑디맑은 화천군에서는 그렇다.
백암산케이블카는 국내 최북단에 위치한 케이블카이자 가장 높은 곳(1,178m)에 닿는 케이블카다. 46인승이지만 안전을 위해 최대 40명까지만 탑승이 가능한 케이블카는 편도 2.217㎞ 구간을 오가며 그동안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은 절경을 선보인다. 백암산 정상에 오르면 평화의댐과 금강산댐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주소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한묵령로 1285-89
아를테마수목원은 북한강을 이웃해 조성돼 있다. 강변에 홀로 우뚝 선 느티나무 한 그루는 드라마, 뮤직비디오에도 등장했던 나무로 사진 애호가들에게 인기 있는 오브제다. 수변을 따라 걷거나 자작나무 숲길을 거닐며 늦봄을 만끽하기에 좋다.
주소 강원도 화천군 하남면 거례리 514-1
북한강 가운데 있는 다리가 놓인 섬이다. 섬이 붕어를 닮아서 또는 옛날부터 붕어가 많이 잡혀 붕어섬이라 불렀다. 휴양은 물론 레저시설까지 갖추고 있어 사계절 언제 찾아도 좋다. 사진 애호가들에겐 출사지로 연인이나 가족에겐 피크닉 장소로 인기가 높다.
주소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하리 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