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人지도

건물에 담아둔 땅과 시간의 기억

이현호 건축가에게 ‘건축’이란 땅이 품은 이야기를 길어 올려 사람들의 기억을 잇는 일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과거를 떠올리고, 가슴 속의 감성도 터트린다.
이현호 건축가와 건축의 힘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글. 조수빈  /  📷사진. 황지현

100년된 건물, 다시 문을 열다

덕수궁을 지나 돌담길을 따라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역사 속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클래식한 붉은색 벽돌 건물을 만나게 된다. 심플한 외관의 이 건물은 복합문화공간인 정동1928아트센터(이하 정동아트센터)다. 붉은색 외벽과 현관을 바치고 선 네 개의 회색 기둥에 왜인지 위엄이 느껴지는건 세월의 힘이기 때문이리라. 정동아트센터는 우리나라의 굴곡진 역사와 파란만장한 변천사를 모두 지켜본 정동의 터줏대감이다.
정동아트센터 건물이 정동에 터를 잡은지는 벌써 96년. 옛 이름은 ‘구세군 중앙회관’으로 태초에 이곳은 1908년 조선에 처음 발을 디딘 구세군이 1928년도 본격적으로 선교 사업을 벌이기 위해 지은 본부였다. 이후 한참이나 선교와 교육을 위해 문을 활짝 열어두던 이곳은 지난 2019년부터 ‘문화예술’이라는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시민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공간의 역할이 바뀜에 따라 대대적인 수리가 필요했는데, 이때 팔을 걷어붙인 이가 이현호 건축가다. 1928년 건축 당시만 해도 구세군 중앙회관은 서울의 10대 건물에 꼽힐 정도로 유명세를 떨치던 랜드마크였다. 하지만 이 건축가가 처음 마주한 건물은 오래된 건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 건물은 ‘근대 건축물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요. 하지만 잘 보존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어요. 공간을 사용하는 데 있어 큰 고민 없이 그저 용도에 따라 여러 옷을 입혀둔 것 같았어요. 90년이 넘는 세월동안 여러 겹의 옷을 마구 껴입고 있었던 거죠.”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만난 ‘세월’이라는 속살

그렇게 시작된 정동아트센터 재생 프로젝트는 사실 모험이나 마찬가지였다. 보통 ‘건축’이라 함은 설계 도면을 그린 후 공사가 시작되는 게 일반적인데, 정동아트센터의 경우는 백지의 상태에서 시작됐다. 역사적인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신경 써 온 건물이 아니었기에 보존 상태를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단 뜯어보기로 했다. 몇 겹씩 덧씌워진 옷을 벗기는 동안 무엇을 남겨두고, 무엇을 새로 고칠까 고민하고 결정하는 과정을 거듭했다. 수십 가지의 선택의 갈림길 앞에서 그는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을까.
“건물이 품고 있는 공공의 기억을 훼손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이곳은 본래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던 곳이었잖아요. 특히 외관과 메인 로비, 예배당같이 사람들의 손때가 묻은 자리는 최대한 그들이 공유한 시간과 추억을 살려놓고자 ‘복원’과 ‘보존’에만 초점을 뒀어요.” 정동아트센터의 외관은 100년 전 모습을 그대로 하고 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복도의 반질반질한 나무 바닥이나 칠이 벗겨진 벽과 타일, 벽돌이 차곡차곡 포개어진 구조물 형태도 그대로 뒀다. 앞에 벽을 덧대더라도 일정 부분에서는 원형을 감상할 수 있도록 막지 않았고, 어떤 곳에는 오히려 조명을 설치해 당시의 흔적을 과감하게 강조했다. 100년 전의 모습을 박제하려는 게 아니다. 이 건축가는 이곳에 켜켜이 쌓인 시간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정동아트센터에서 이 건축가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의 나무 난간이다. 본래는 가벽이 있던 자리로 답답하게 막혀있던 공간이었는데 벽을 허물고 난간의 뼈대만 살려뒀다. 덕분에 차창 가득 들어온 햇볕이 공간을 뭉근하게 데워준다. 창 너머 햇살을 바라보다 문득 ‘과거 사람들의 시선에 담긴 풍경도 이랬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괜히 뭉클해지기도 했단다.

공간과 시간이 빚어낸 작품

정동아트센터 재생 프로젝트는 외관을 비롯해 전혀 손을 대지 않은 공간이 많기에 단순히 ‘리모델링’ 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에 ‘건축’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건축’이 단순히 ‘건물을 짓는 일’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란다. “건물을 아예 새롭게 바꾸려던 게 아니었어요. 정동이라는 지역이 가지는 의미, 건물이 품고 있는 이야기, 건물 주변의 환경을 두루 해석해야 하는 일이었죠. 사실 건축이란 삶의 내밀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함께 맞춰나가야 하는 작업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건축에는 완공이 없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건축이란 좋은 캔버스를 만드는 일인데, 그가 우리 손에 쥐여 준 ‘정동아트센터’라는 캔버스에는 계속해서 새로운 이야기들이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100년 된 이 건물을 이제는 ‘예술작품’이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 실제로 요즘 건축물들은 단지 공간이라는 의미를 넘어 사람들에게 새로운 의미와 경험을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작품’이라고들 한다. 이 건축가는 이 표현에 꼭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건축에는 불가결한 요소가 있어요. 옮길 수 없다는 거죠. 어떤 사람이 한 공간에 오래 있던 건물이 사라진 모습을 보고 ‘오래된 친구가 사라진 느낌’이라고 하더라고요. 건축은 그런 거예요. 공간이 만들고 시간이 쌓은 예술이죠. 그런 의미에서 정동은 특별합니다. 500년 된 덕수궁과 100년 된 정동아트센터와 고층 빌딩들이 공존하는 곳이니까요.”
돌담길을 걸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사이로 한 청년이 두루마기 자락을 휘날리며 지나간다. 또 한 곳에는 100년 전부터 흘러왔을 구세군의 종소리가 들린다. 이 건축가가 만들어낸 세계에는 이처럼 세월이 중첩되고 있었다. 한 번쯤 그가 새겨둔 시대의 흔적을 따라 거닐어 봐도 좋겠다. 언젠가 이 길을 걸었을 사람들과 ‘정동’이라는 기억을 공유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