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상

신당동
떡볶이 골목

냄비 가득 팔팔 끓고 있는 떡볶이 앞에서 우리는 참을성이 없어진다.
뜨거운 떡 하나를 건져 후후 불면서도 젓가락을 쉽게 놓을 수 없고,
밥까지 정신없이 볶아 먹은 후에야 비로소 식사가 끝났다는 듯 젓가락을 놓게 된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혼을 쏙 빼앗는 마성의 간식, 떡볶이의 역사는 신당동에서 출발한다.

📝글. 편집실  /  📷그림. 결(Gyeol)

매콤달콤한 국민 간식
떡볶이의 부흥지

빛바랜 간판과 바람에 묻어 날리는 녹진한 고추장 냄새로 이곳의 세월을 짐작해본다. 신당동 떡볶이 골목의 역사가 시작된 지도 벌써 60년이 훌쩍 넘었다. 신당동 떡볶이의 역사는 마복림 할머니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떡볶이의 역사를 새로 쓴 사람이다. ‘떡볶이’ 하면 흔히 떠올리는 ‘고추장 떡볶이’를 발명한 사람이 바로 마복림 할머니다. 195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 역사에 ‘빨간’ 떡볶이는 없었다. 마복림 할머니가 고추장으로 떡볶이를 만들 생각을 하게 된 건 정말 우연이었다. 한국전쟁이 끝나던 해 우연히 짜장면에 떨어진 떡을 맛보게 됐는데, 그 맛이 그리 좋았다는 거다. 뜻밖의 맛을 발견한 그는 춘장과 고추장 등 여러 장류를 혼합해 빨간 떡볶이를 만들게 됐다.

처음에는 가판 하나를 세워두고 장사를 시작했다. 큼지막한 떡을 고추장에 지져 팔았더니 그 달큰한 냄새에 사람들이 홀린 듯 모여들었다. 주머니가 가벼웠던 시절에 고추장으로 지진 떡은 남녀노소에게 최고의 간식이었다. 이후 한 냄비 가득 떡과 채소, 고추장, 춘장을 넣고 연탄불 위에서 팔팔 끓여 내는 형태로 발전시키며 지금의 ‘즉석 떡볶이’가 탄생하게 됐다.
신당동 떡볶이가 전성기를 누렸던 때는 1970년대다. MBC 라디오 <임국희의 여성살롱>에 신당동 떡볶이가 소개되며 입소문이 난 게 시작이었다. 마침 떡볶이 골목 앞에 극장이 개관하면서 신당동이 젊은이들의 메카가 됐고, 여기에 화룡점정인 뮤직박스와 DJ를 도입하면서 젊은이들의 발길을 확 끌어당긴 것이다. 덕분에 청춘 남녀들은 신당동 떡볶이 골목을 자신들의 아지트처럼 드나들면서 우정과 사랑, 그리고 추억을 나눴다.

60년이 지난 지금, 그 기나긴 세월이 ‘힙’으로 통하며 신당동 떡볶이 골목이 전성기를 재현하고 있다. 이제는 신당동이 아닌 힙당동으로, 추억의 떡볶이 골목은 ‘옛것’과 ‘요즘것’이 조화를 이루는 떡볶이 타운으로 불리면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소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