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 사유

기억
그 주관적 세계

📝글. 양정우 마인드온 정신건강의학과 대표원장

기억이란 무엇일까

기억은 선택적이다. 기억이란 ‘무심코 떠오르는 것들’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모든 기억의 대상은 의식 또는 무의식적으로 선택의 과정을 거치게 마련이다. 기억에 대한 평가 역시 대단히 선택적이다. 사람들은 좋은 기억에게는 ‘추억’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좋지 않은 것들에는 ‘흑역사’ 또는 ‘트라우마’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처럼 잊고 싶지 않은 기억과 잊고 싶은데도 살아남은 기억들이 혼재되어 모자이크를 이룬다.
우리의 삶은 연속적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기억들은 하나의 삽화처럼, 더 짧게는 하나의 장면처럼 남게 된다. 머릿속에서 원하는 장면을 꺼내어 기록하고 편집하는 것이 바로 기억하는 과정의 핵심이다. 각자 기억을 처리하는 방식은 가지각색이다. 예를 들어 보자. 한 가지 주제에 대한 영상일지라도 편집자의 스타일에 따라 여러 갈래로 편집 방식이 다양화되듯 기억에 대한 편집도 마찬가지다. 기억을 처리하는 각자의 성향을 ‘성격’이라 칭해도 무방할 것 같다.

당신의 첫 기억은 무엇입니까?

같은 맥락에서 ‘첫 기억’에 대한 사람들의 대답은 천차만별이다. 질문을 받을 때마다 대답이 달라질 수도 있다. 나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무엇을 떠올릴까. 아빠에게 대들다 혼났던 장면 같기도 하고, 유치원에서 학예회를 했던 순간 같기도 하다. 내가 가진 온전한 기억인지, 어린 시절 사진을 보고 뇌리에 남은, 만들어진 기억인지 알 수 없다. 대단히 주관적인 대답들이다. 어차피 ‘기억’ 이란 것이 나의 선택으로 설정된다면 나의 첫 기억을 제대로 골라보는 것도 좋겠다(기왕이면 좀 괜찮은 것으로 하자. 내 마음이니까). 그렇다면 당신들은 무엇을 첫 기억으로 하겠습니까? 질문을 조금 바꿔 본다. ‘첫 사랑이 기억나나요?’ 나의 첫 사랑은 짝사랑이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니 정말 좋아했던 건지, 첫사랑을 할 나이쯤 되었다고 생각해서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믿었던 건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때는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였다. 중학생이었다면 모를까 어엿한 고등학생이라면 사랑을 좀 해야 한다, 싶었다. 미숙한 풋사랑의 상대는 마치 표범 같은 누나였다. 교내에 몇 안 되는 예체능 계열 전공자였던 그누나는 야간 자율 학습을 하지 않고 하교 시간만 되면 유유히 운동장을 가로질러 나갔다. 그리고는 동네 오락실에서 격투 대련 게임을 했다. 나는 종종 오락실로 따라가 누나의 건너편에 앉아 대결을 신청했다. 오락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함께 게임을 하고 있다 보면 뭔가 ‘같이’ 하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처음에는 내가 이길 수 있어도 누나를위해 져 줬지만, 날이 갈수록 최선을 다해도이길 수가 없었다. 그 누나는 게임 천재였으니까. 져도 좋았다.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해도 그냥 좋았다. 누나를 만나려면 야간 자율학습을 빼고 오락실을 가야 했는데, 그럴 때마다 담임 선생님에게 혼나도 좋았다. 분명사랑이긴 했나 보다(사랑의 결과물은 ‘게임 실력이 조금 올랐다’ 정도로 끝났지만).사실 그 전에도 선생님이나 초등학교 때 짝꿍을 좋아했던 것 같긴 하지만 왜인지 나는이 누나를 첫 사랑의 기억으로 골랐다. 내첫 사랑의 타이틀을 부여하기에 이 누나가 가장 예뻤던 것 같다.

기억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삶

사람들은 생산적으로 살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한다. 아마 생산적이지 못한 자신에 대한 자책이 대부분일 것이다. 생산이면 생산이고, 소비면 소비지, 생산‘적’이라는 건 무엇일까. 생산적이라는 말은 어감상 생산‘척’에 가깝게 느껴진다.
보통 사람들은 퇴근한 뒤에도 영어 공부를 한다든지, 그림을 그린다든지 하는 취미 생활을 할 때 생산적이라는 표현을 많이 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영어 공부 같은 건 소비에 더 가깝다. 학원비, 교재비 등을 지출해야 하니까 말이다. 설사 영어를 잘하게 되어 자신 있게 해외여행이라도 간다 치면 그건 엄청난 지출이다. 영어로 돈을 벌게 된다면 ‘생산’이라 할 수 있겠지만 사실 생산은 우리가 일을 하는 노동 현장에서만 일어나는 게 대부분이다. 결국 그 외 활동의 본질은 소비라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산인 ‘척’을 해서 생산적이라고 이야기하는 거겠다.
다만 이 생산인 척하는 소비 활동들을 기록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리 인간은 본질적인 소비도 생산과 최대한 가까운 느낌이 들어야 안도하기 때문이다. 생산과 소비의 줄다리기’라는 관점에서 블로그와 일기를 떠올려 본다. 특히 블로그는 이러한 현상을 잘 설명해 준다. 온갖 소비와 지출이 일어나더라도 경험과 후기를 덧입혀 기록하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소비에 대한 죄책감은 희석된다. 기록을 통해 기억 또한 조립되고 만들어진다. 삶이라는 책에 한 장의 기억이 덧새겨지는 과정이다.

우리는 무엇을 기록하고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인생이란 게 대단히 좋은 기억으로만 가득 차지는 않는다. 첫사랑 같은 인생의 중대사도 희미한 기억 한두 개로 남을 뿐이다. 시간이 지나 되새겨보면 기록으로 남겨둔 나날들이 더 또렷하게 머리에 각인되어 있다. 컴퓨터 본체보다 외장하드의 생명이 더 길 듯이. 꽤 괜찮은 장면들을 기억으로 오래 남겨두기 위해서는 일기나 블로그를 기록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세상사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다지만, 놀랍게도 내가 오래 기억하고 싶은 것들은 내가 선택할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의 삶은 연속적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기억’ 들은 하나의 삽화처럼, 더 짧게는 하나의 장면처럼 남게 된다. 머릿속에서 원하는 장면을 꺼내어 기록하고 편집하는 것이 바로 기억하는 과정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