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지구

하늘에서 내리는
플라스틱

📝글. 박상현 조선일보 기자

첫눈이 쏟아진 11월 말, 아이를 데리고 아파트 놀이터에 나가 함께 눈 내리는 걸 구경했습니다. 겨울 한복판에나 볼 법한 많은 눈이 늦가을 끝자락에 내렸습니다. 한 살 아이는 쏟아지는 눈이 신기한지 연신 하늘을 올려다 보고, 고사리손을 쫙 펴 손바닥에서 천천히 녹아가는 눈꽃을 바라봤습니다. 축축한 습설(濕雪)이었던 탓에 놀이터에서 보낸 시간이 길지 않았는데도 눈은 빠르게 쌓여갔습니다. 칼바람까지 불기 시작해 눈밭에 발 도장을 남겨두고 급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눈발을 맞은 외투를 말리려고 식탁 의자에 걸어두기를 몇 시간. 눈 흔적은 사라졌는데 먼지 얼룩이 남아있었습니다.

눈은 대기 중 수증기가 높은 곳에서 찬 공기를 만나 얼어붙어 떨어지는 현상입니다. 이것은 눈에 대한 순수한 정의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맞는 눈에는 물뿐만 아니라 각종 먼지와 오염물질이 뒤섞여 있습니다. 한겨울로 갈수록 우리나라에 떨어지는 눈에는 중국발(發) 미세먼지가 많이 섞이게 됩니다. 석탄 난방을 떼며 미세먼지 인자가 서풍을 타고 우리나라로 많이 유입되기 때문입니다. 서울의 눈을 ‘회색 눈’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서울에서 새하얗고 깨끗한 눈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나 떠올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요즘 걱정되는 것은 ‘플라스틱 눈’입니다. 5mm 미만으로 잘게 쪼개진 미세 플라스틱이 대기를 부유하다가 하늘 높이 올라가 눈과 함께 지상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작년 10월 일본 와세다대 연구팀은 후지산과 오야마산 해발 1,300~3,776m에 있는 구름을 분석한 결과 각종 플라스틱이 검출됐다고 발표했습니다. 구름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확인된 건 처음이었습니다. 구름 시료를 살펴보니 1L당 6.7~13.9개의 미세 플라스틱이 들어있었고, 이중엔 수분을 빨아들이는 성질을 가진 플라스틱도 포함돼 있었다고 합니다. 수증기가 얼어서 떨어지는 눈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미세 플라스틱이 물을 빨아들이며 무거워져 떨어지는 ‘플라스틱 눈’이 실제로 내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각종 플라스틱 제품을 눈과 비로 맞고, 숨으로 들이마실 날도 살면서 더 많아진 셈입니다.

신생아가 태어나서 처음 배설한 태변(胎便)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상당량 검출됐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미세 플라스틱이 산모의 몸을 통해 태아의 소화기로 이동한 것입니다. 미국 뉴욕대와 중국 난카이대 공동 연구팀이 뉴욕주의 신생아 3명의 태변 샘플을 채취해 분석한 결과 이중 2명에게서 태변 1g당 1만2,000ng(나노그램·10억분의 1g)과 3,200ng의 페트(PET) 성분이 각각 검출됐습니다. PET는 생수병 등에 사용되는 가장 일상적인 플라스틱입니다. 뉴욕대 연구팀은 생후 1년 이내 유아 6명에 대해서도 대변 검사를 했는데, 6명 모두에게서 1g당 5,700~8만2,000ng의 PET 성분이 나왔습니다. 아이들이 플라스틱 소재 카펫에서 뒹굴거나, 합성섬유를 빨고 씹으면서 미세 플라스틱 섭취가 많아진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어쩌면 눈은 인간이 환경에 낸 상처가 그대로 돌아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구는 모든 것이 순환하도록 설계돼있기에, 인간이 만들어낸 미세먼지나 플라스틱도 어떤 형태로든 결국 인간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다만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아서 체감하지 못할 뿐 우리 일상은 미세하게 망가져 가고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담요를 두르고 창밖으로 눈 구경을 이어갔습니다. 늦가을까지 포근했던 탓에 아직 낙엽이 되지 않은 단풍이 나무에 붙어있었고, 그 위로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갔습니다. 단풍과 폭설이 한데 섞인 아이러니가 망가진 날씨 패턴과 기후위기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한편으론 살면서 미세먼지도, 플라스틱도 없는 순수한 눈을 만날 날이 올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당장은 힘들더라도 적어도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의 어느 겨울날에는 하늘에서 깨끗한 눈이 내리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