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人지도
선율이 흐르는
나의 소우주
차에서, 카페에서, 길거리에서… 음악은 우리 일상 속
모든 순간에 스며들어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조금 다르다. 콩치노 콩크리트에서 만큼은 음악은 배경이 아닌 주인공이다.
음악이 가지는 아득한 깊이를 탐험해 보자.
오정수 대표가 음악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콩치노 콩크리트 오정수 대표
📝글. 조수빈 / 📷사진. 황지현
음악이 준 깊은 울림
주말 아침의 파주는 한산했다. 가는 길목도 그리 소란스럽지 않았다.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러나 콩치노 콩크리트의 문을 연 순간 웅장한 클래식 선율이 공간을 압도했다. 100년이 넘은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귀가 아닌 가슴을 먼저 울렸다. 오정수 대표가 운영하는 콩치노 콩크리트는 오로지 음악만 있는 공간이다.
오 대표의 음악 사랑은 역사가 오래됐다. 10대 때부터니 자그마치 40년 세월이다. 처음 음악에 귀가 열린 건 중학생 시절이었다. 방황하던 중학생 오정수에게 라디오 너머로 흘러나오는 클래식이 위로가 됐다. “십대는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힘들다고 생각하는 시기잖아요. 그때 음악이 참 위로가 됐어요. ‘가곡의 밤’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즐겨 들었는데, 클래식이니 고전이니 하는 지식 없이도 그저 선율이 좋더라고요.”
그러던 중 친형이 사다 준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 일명 워크맨이 음악 사랑의 증폭제 역할을 했다. 어딜 가든 워크맨과 함께했다. 음악이 있는 삶이라는 게 얼마나 행복한 건 줄 그때야 알게 됐다. 어떤 날에는 천국을 만나기도 했단다. “비가 억수 같이 쏟아지던 어느 여름이었어요. 비가 잠깐 그쳤을 때 집 뒤의 야트막한 산에 올라갔거든요. 산 위에서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을 듣고 있는데, 때마침 구름 사이로 햇살이 드는 거예요. 정말 감동적인 순간이었어요. 음악이 있었기에 그 광경이 더 아름다웠던 거겠죠.”
이후 음악에 대한 그의 사랑은 거침없었다. 20대 초반 음악 잡지를 사 모으고, 음악다방도 문턱이 닳도록 다녔다.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을 몽땅 투자해 오디오 장비를 샀고, 스피커와 앰프, 턴테이블도 사 모았다. 지금까지 번 돈의 90%는 음악에 투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직 음악을 위한 공간
파주의 콩치노 콩크리트는 오 대표에게 꿈의 집합체다. “공간에 대한 갈증이 있었어요. 음악이란 소리의 크기가 중요한 요소 중 하나거든요. 일정 이상의 볼륨으로 들어야 그 에너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도심에서는 도무지 만족스러운 감상을 할 수 없는 거예요. 이웃에 피해가 될 수도 있고, 도시의 소음이 음악을 파고드니까요.” 그런데 왜 하필 파주일까. 보통 공연장이나 재즈 클럽 등은 대부분 밀폐되어 있다. 음악과 나, 단 두 가지만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그러나 오 대표는 한 가지 더 원했다. 바로 ‘자연’이다. 파주는 산이 낮고 평야가 많아 시야가 탁 트여 있다. 바로 앞으로 임진강이 흐르고, 강 건너로는 북한을 마주하고 있다. 게다가 해가 늦게 져 여름이면 저녁 아홉 시께에도 노을의 잔상이 남아있다. 오 대표는 이곳에서 음악과 자연이 주는 충만한 감동을 전하고 있다.
사실 파주에 음악감상실을 짓겠다는 결심을 하고, 공간이 문을 열기까지는 장장 10년이 넘게 걸렸다. 그 과정이 모두 꿈과 가까워진다는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지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꽤 애를 먹었던 과정이 있었으니 바로 오디오를 튜닝하는 일이었다. “일을 벌였으니 음악을 제대로 들려 드려야 되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큰 공간에서 음악을 틀어본 적이 없었어요. 쾌감이 느껴지는 음을 이끌어내는 데에만 꼬박 3년이 걸렸어요. 미지의 영역을 탐구하는 기분이었죠.”
음악 한길만을 파는 외골수 같은 오 대표는 사실 본업이 따로 있다. 주중에는 의사로, 주말에는 DJ로 두 가지의 삶을 플레이하는 중이다. 금요일 퇴근 후 자유로를 달려 파주로 오고, 일요일 오후면 다시 서울로 돌아간다. 이 생활이 힘들 법도 한데 좋아하는 일을 해서 그런지 하나도 힘들지 않단다.
우리 모두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
어린 시절 음악에게 위로를 받던 그는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난히 지친 날이면 오디오 전원을 켠다. 음반을 고르고, 오디오 위에서 볼륨을 섬세하게 조절한 다음 자신이 만들어낸 소리로 음악과 교감한다. 그러는 동안 마음은 자연스레 사그라든다. 자신을 따스하게 휘감는 음악 속에 얼마나 부드럽고 강한 힘이 실려있는지 알기에 이 기나긴 덕질이 쉽게 끝날 리 없다.
다만 콩치노 콩크리트 대표가 되고부터는 음악에 대한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 “예전에는 단순히 저 혼자 하는 취미 생활이었다면, 이제는 음악에 대한 감동을 잘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겼어요. 세상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는데, 각자 앞에 놓인 길을 걷다 보면 다른 길은 잘 못 보기 마련이거든요. 그런 이들에게 ‘음악’이라는 세계도 있다고 이야기해 주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콩치노 콩크리트를 찾는 이유는 다양하다. 음악을 즐기러 오는 클래식 마니아도 있지만, 공간 자체가 좋아서 오는 사람들도 있다. 이때 마니아들에게는 더 심도 있는 세계를 보여주고, 일반인들에게는 음악의 세계를 자유롭게 유영하며 클래식과 재즈의 매력을 찾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오 대표의 역할이다. 스트리밍 서비스 등으로 음악을 편히 듣던 이들이 이곳에서 ‘음악을 제대로 듣는다는 건 이런 거구나’ 하고 느낀다면, 그것만으로도 오 대표는 만족한단다.
입이 닳도록 음악 예찬론을 펼치던 그에게 음악을 곁에 두고 살아야 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는 조금 다른 대답을 내놨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음악을 좋아할 수밖에 없어요. 음악은 우리의 동반자거든요.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늘 함께하니까요. 만약 천국이 있다면, 그곳엔 반드시 음악이 있을 거예요.”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오 대표가 말하는 ‘음악의 세계’에 대한 형태가 점차 또렷해졌다. 바로 행복이 꽉 찬 세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