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갈지도

푸르른 날의 기억

단양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는 서정주 시인의 시가 떠오르고 말았다.
단양의 푸름 덕분이었다.

📝글. 📷사진. 박재현 소설가

단양강 잔도

절벽에서도 평온한 절벽

나무 데크 길은 익숙하지만 절벽에 붙어 있는 건 처음이다. ‘잔도’는 벼랑에 선반처럼 매단 길을 말한다. 생각보다는 덜 아찔하고 여유로운 공기가 흐른다. 바로 앞에 남한강이 흐르기 때문이다. 내 발소리도 다 듣고 있을 것처럼 한가로운 얼굴이다. 걷는 동안 무수한 초록과 마주한다. 여러 종류의 나무가 색뿐만 아니라 향과 약간의 흔들림으로 반가움을 표한다. 강의 표면에 비친 모습이 멀리서 보면 완벽한 데칼코마니로 샐러드와 번의 위치가 바뀐 햄버거 같다. 길을 빠르게 걷는 이는 없다. 모두 느림보가 되어 단양의 푸름을 넉넉히 즐길 뿐이다.

근처에 만천하스카이워크와 수양개 선사유물전시관이 있어 함께 구경하길 권한다.

구인사

사이의 아름다움

외국인이 한국에서 특별한 절을 하나만 추천해 달라고 한다면 이곳을 말해 줄 것이다. 단층의 목조 건물을 한 전통 사찰과 달리 이곳은 다층의 콘크리트 건물이다. 그것도 50여 동이 넘는데다, 산 사이의 좁은 비탈길에 있다. 꼭대기까지 가는 길 자체가 고행이다. 고행 중에 절의 아름다움이 연속적으로 다가온다. 그건 ‘사이’에 있다. 좁은 길이 주는 선물처럼, 건물과 건물 사이로 보이는 나무, 기둥과 기둥 사이로 보이는 다른 건물의 처마 등이 정면에서 봤을 때보다 큰 여운을 준다. 꼭대기에 있는 대조사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자. 산과 산 사이로 보이는 여러 개의 지붕들이 힘들었던 순간들을 누그러뜨려 줄 것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절 입구까지 셔틀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버스비는 무료고 주차비는 삼천 원이다.

고수동굴

지금이 유일한 순간

종유석과 석순이 어느 정도 있는 평범한 동굴을 예상했는데, 하나의 세계가 있다. 크고 화려하다. 먼 행성에서 사는 이들이 만든 것처럼. 사실 우리와 거리보다는 시간적으로 먼, 그러니까 선사시대 사람들이 이곳을 주거지로 썼다. 그들의 모습을 어렴풋이 상상하며 시간과 물이 응축한 작품을 꼼꼼히 본다. 저 긴 돌이 어떻게 천장에 매달려 있는 걸까, 하며 어렸을 때와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든다. 매일 조금씩 자라는 것이니, 지금 보는 이들의 모습만큼은 마지막일 거라고. 그러니 보다 소중히 여겨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하루처럼 말이다.

일년 내내 기온이 15도라, 여름에는 서늘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개방된 길을 다 둘러보는 데 40분 정도 소요된다.

남한강

하늘 위의 미소

하늘 위를 유영하는 건 SF 영화 속의 일 같지만, 단양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단양은 패러글라이딩의 성지다. 면적의 80퍼센트가 산인 데다 기후도 알맞다. 하늘을 날면 그 행위에서 먼저 탄성이 나오고, 이어서 아래에 펼쳐진 풍경에 또 다른 탄성이 나온다. U자로 굽이치는 남한강의 시원한 물줄기가 가장 시선을 끈다. 늘 하늘의 색을 따라하니 금세 친근해진다. 남한강이 감싸고 있는 시내는 블록 장난감으로 만든 것처럼 귀여워 보이고. 활공장에서 직접 타지 않고 하늘 위로 떠다니는 패러글라이더만 봐도 미소가 나온다. 마침 팽팽하게 펼쳐진 날개가 웃을 때의 우리 눈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두산마을에 패러글라이딩 업체가 모여 있다. 카페도 있어 커피를 마시며 시원한 전망을 감상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