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지구

기후변화 시대의
피난처

📝글. 정철순 문화일보 기자

수년 전부터 우리 가족은 여름 휴가를 7월 말에서 8월 초에 맞춰 강원 태백· 대관령으로 떠납니다. 2023년 폭염이 심할 때도 강원도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폭염을 다른 나라 이야기로 생각했습니다. 고원도시인 태백은 평균 해발 고도가 902.2m에 달하고 도심 지역 높이도 778m로, 더위를 일으키는 지표의 복사열의 영향이 크지 않습니다. 오히려 휴가 준비물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람막이입니다.
도심의 폭염에 시달리다 더위가 사라진 곳에서 휴가를 보낼 때는 가족 모두가 편안함을 느낍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도 여름 동안 제대로 야외활동을 하지 못하다 그때만은 더위를 걱정하지 않습니다. 좀비 영화를 보면 좀비가 무서워 거리에 다니지 못하다 어렵게 찾은 피난처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감정과 비슷합니다.

기상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를 ‘예측 가능 범위 밖의 현상’으로 설명합니다. 평년 범주 내의 기상 현상이 아닌 그 범위를 넘어서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특히 지난해 여름 서울과 부산, 제주 등 전국 상당수 지역에서 열대야 연속일수를 기록을 경신했고 서울에서는 9월 열대야까지 연이어 나타나며 국민들은 기후변화를 선명하게 인식했습니다. 기후변화가 여름에만 찾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기후변화가 여름에 극적으로 나타나고, 우리는 그때 더 긴장하는 것입니다. 가을과 겨울로 접어들며 평년 범주 내의 기상 현상을 보이면 점차 위기감이 무뎌집니다.

기후변화는 전 지구적 기후의 변화입니다. 특히 현세기 기후변화는 장기간에 걸쳐 누적된 기후의 변동으로 지구 대기 온실가스의 인위적 배출 및 농도 상승이 주원인이 됐습니다. 일국 차원의 문제가 아닌 전 지구적 현상에 대해 세계가 대응하려 움직이지만, 현실은 쉽지 않습니다.
지난 2월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기후변화의 과학적 근거에 관한 제1실무그룹 보고서와 기후변화의 영향과 전망을 담은 제2실무그룹 보고서, 기후변화 완화에 필요한 노력을 다루는 제3실무그룹 보고서를 2028년 5월부터 차례로 발간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한국 정부 또한 이달 초부터 시작될 저자 선정 과정에 대응, 향후 보고서 작성에 국내 전문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해당 회의에 불참했고, 자국 내 환경 규제를 대거 완화하며 온실가스 배출 규제를 완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는 전 세계 ‘공동의 대응’이 가능해야 의미가 있지만, 온실가스 배출의 가장 큰 책임을 갖는 미국의 자국 중심 움직임을 보면서 미래가 밝지만은 않게 보입니다. 국내 또한 각종 기후변화 대응에 지역 이기주의와 정파적 갈등을 보입니다. 과연 우리가 기후변화를 당면한 위기로 보고 있는 것일까요?

재난 영화에서 피난처에도 위기가 닥치는 것처럼 지난해 여름 휴가 첫날인 8월 1일, 전국이 지도상 폭염을 뜻하는 ‘빨간색’으로 표기돼도 유일하게 ‘파란색’ 을 유지하던 태백 지역에 폭염특보가 발효되며 색깔이 변했습니다. 우리 가족의 피난처에도 조금씩 찾아오는 위기감이 느껴집니다. 지역에서 만난 사람들 또한 과거와 다른 더위를 느낀다고 합니다. 우리 가족까지는 태백에서 잠시나마 폭염에서 피난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저의 7살 아이가 가정을 꾸릴 때는 어떤 모습일지 희망보다는 걱정이 앞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