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쓸모

작가들이 사랑한
가족

가족이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응원이 되는 존재다.
작가들의 삶을 함께한 동반자이자
영감을 주는 뮤즈가 된 가족을 소개한다.

📝글. 조수빈

앨리스 워커와

흑인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앨리스 워커는 닭 애호가였다. 닭에게 안락한 보금자리를 만들어주는 건 물론,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거트루드 스타인’ 등의 멋들어진 이름을 붙여주며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한때는 무려 닭 12마리와 생활하며 관찰했던 닭의 습성, 닭들에게 쓰는 편지 등을 묶어 『닭 연대기』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닭들은 내가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한 열린 공간들을 뚫고 들어갔습니다.”라는 말에서 그는 닭을 인생의 스승으로 삼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고양이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속에는 고양이가 자주 등장한다. 『해변의 카프카』 속 인물은 고양이들과 소통할 줄 알고, 『1Q84』는 고양이 마을이 배경이다.
실제로도 그는 이름난 고양이 집사다. 고양이 덕분에 명작이 탄생했다는 일화도 있다. 고양이의 이름은 ‘뮤즈’. 소설가가 되기 전 바와 재즈 카페를 운영했던 하루키는 늘 뮤즈와 함께했다. 카페의 영업이 끝나면 뮤즈를 무릎에 앉혀놓고 맥주를 홀짝이며 소설을 써 내려가곤 했다. 그러다 몇 년간 일본을 떠나있게 되면서 한 출판사 부장에게 뮤즈를 맡기게 되었다. 이때 그는 ‘장편을 하나 써드릴 테니 부디 이 아이를 부탁한다.’라며 딜을 했고, 그렇게 쓴 장편이 바로 그의 책 중 가장 많이 팔린 『노르웨이의 숲』이다.
이후 소설을 완성하고 일본으로 돌아온 하루키는 뮤즈를 만나러 가는 길이 마치 연인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설레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뮤즈를 그리워하는 힘으로 명작이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찰스 디킨스와
까마귀

찰스 디킨스에게는 특별한 가족이 있었다. ‘그립 더 노잉’이라는 반려 까마귀다. 디킨스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 중 “나는 여기서 까마귀 외에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아.”라는 대목에서 그가 그립에게 많이 의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립은 익살스러운 행동을 자주 했다. 특히 사람들이 말하는 모습을 잘 흉내 냈는데, 그럴 때마다 디킨스는 귀여워 어쩔 줄 몰랐다고 한다.
그립이 죽은 후 디킨스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애도를 했다. 그립을 박제해 자신의 서재에 전시해두는가 하면, 『바나비 러지』에 그립과 같은 이름의 까마귀를 등장시키기도 했다. 이후 에드거 앨런 포는 이 소설에 영감을 받아 「갈까마귀」라는 명작을 남기기도 했다.

파블로 네루다와 개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반려견 ‘쿠타카’는 그에게 가족이자 생명의 은인이다. 네루다가 쿠타카를 데리고 밤 산책을 나섰던 어느 날, 그는 발을 잘못 헛디디는 바람에 기차 선로로 쓰러지고 말았다. 바로 앞에서는 기차가 달려오던 위험천만한 상황. 이를 발견한 쿠타카가 미친 듯이 울부짖었고, 그 소리를 들은 기관사가 다행히 기차를 세우며 네루다는 안전하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네루다는 쿠타카와 이별 후 시 「개가 죽었다」를 통해 오직 자신을 향했던 쿠타카의 눈빛과 아무 대가 없이 주기만 하는 절대적인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며 슬픔을 기렸다.

헤르만 헤세와 정원

작가 헤르만 헤세는 하루에 글을 쓰는 시간보다 정원을 돌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 그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정원으로 뛰쳐 갔다. 한겨울에도 메마른 풀숲 한 귀퉁이를 넋 놓고 바라보았고, 그러다 빼꼼 얼굴을 드러낸 들꽃이라도 만나는 날이면 봄이 왔다 싶어 다시 부지런히 정원을 가꿨다. 그리고 글을 쓰느라 바쁜 대신 들판과 꽃, 구름을 캔버스에 담느라 하루를 다 보냈다. 정원에서의 시간을 조금도 빼앗기기 싫어서 정작 글은 해가 진 뒤에야 썼을 정도란다.
그는 꽃과 나무가 만들어낸 풍경 속에 있으면 마치 천국에 있는 것처럼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헤세는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는 동안 수차례 거주지를 옮겨 다니면서도 매번 정원을 가꾸었다. 그에게 정원은 쉼터이자 안식처였던 셈이다.